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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마블] 촬영장에서만나다 3

망상러 2020. 12. 25. 23:29

벼르고 별렀던 금요일이었다.

 

 

오늘만 버티자. 오늘 촬영분 일찍 확인하고 택시 타고, 예약해 둔 정신과 진료를 보러 가는 거야. 나는 나 자신에게 파이팅을 해보았다. 버티자... 버티자 두리야!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배우 스케줄 사정상 영화 촬영이 일찍 끝난다는 희소식이 있는 날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주디가 오늘 밤 끝내주는 곳에 놀러 가자며 옆구리를 찔러댔지만 나는 진료 예약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거절했다. 내 반응에 주디는 매우 아쉬워하며 혼자라도 가서 멋진 남자를 물어오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하는 모습에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성격 밝고 참 좋은데 왜 이렇게 빨리 헤어질까 주디는... 대체적으로 그녀에게 일찍 이별을 고하는 남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성격 좋고 활발하고 건강미 넘치는 친구가 뭐가 맘에 안차서 그녀의 전 남자 친구들은... 아 물론 그 약쟁이는 제외하고, 대체적으로 그녀를 찼다.  she was car  괜한 한국 농담이 생각나서 웃었다. 주변에 이번 주에는 은근 이별한 사람들이 많았다. 내 시선은 주디를 지나쳐 촬영하고 있던 톰에게로 미끄러지며 떠올렸다.

 

 

[톰 홀랜드, -- 몇 년간의 연애를 마치고 이별 

스파이더맨 역할을 맡은 후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영국의 영화배우 톰 홀랜드는 2년간 사귀고 있었던 --와의 공개 열애를 마쳤다. 주변에 의하면 두 사람 중 한 명이 충실하지 않았다고...]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남 걱정이랑 연예인들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말이라는 것에 공감하는 나는 바로 뉴스 채널을 돌렸었지.

 

 

 

 

일찍 끝난다고 아니,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난 오늘의 할 일을 해야 했다.  다시 영화 촬영장 속으로 들어갔다. 오늘의 마지막 씬이었다.

 

준비가 됐나 싶어 방안을 슬쩍 엿봤는데 방 안에서  톰 홀랜드는 아령을 들고 열심히 운동하고 있었다. 연기는 물론 몸까지 관리 소홀히 하지 않는구나. 인스타를 인용한 기사를 봤을 때 원래도 멋진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빌 워 이후로 스파이더맨 팬이 많이 생긴 덕분에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의 옆구리에 붙어있는 살을 열심히 쳐다봤다. 영화 찍지 않는 기간에 열심히 필라테스 하는데 넌 왜 안 빠지니! 열심히 노려본다고 빠졌다면 난 이미... 블랙위도우 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 같은 멋진 몸매를 가지고 있었겠지! 오늘도 배우들의 직업정신에 박수를 보내며 영화 촬영을 시작하겠다는 감독의 사인을 받아 촬영 들어간다고 소리쳤다.

 

 

지금 찍는 장면은 네드가 피터의 정체를 알게 되는 장면이었다. 천장에 붙어서 기어 내려오는 장면은 아까 전 촬영했으니 아마 슈트를 벗고 슈트가 흘러내리는 모습이었다.

 

 

-스파이더맨이었구나

-아니야 아니야!

 

톰 홀랜드가 슈트를 터치하는 순간 뒤에서 잡고 있던 슈트의 줄을 느슨하게 했다 그리고 이미 헐렁해진 슈트가 톰 홀랜드의 환상적인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 하지만 방금 천장에 붙어있었잖아

- 아니야 너 왜 여깄어!

 

아마 지금 촬영장에 있는 모든 사람 아니 적어도 여자만큼은 속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을 거야. 하지만 난 프로니까. 정신을 뺏기지 말자 다짐하며 마저 촬영에 집중했다. 주변을 살피고 배우를 보고 시트를 보고 배우를 봤다... 그리고 또 배우를 봤다. 그리고 또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려고 했다.

 

 

오 이런... 나 정말 입덕이 확실한가 봐.

 

 

 영화 촬영이 드디어 끝나고 자리를 정리하는 상황에서 난 양해를 구하고 미리 빠져나왔다. 내 몫의 뒷정리를 주디한테 부탁하기로 했고, 이미 내가 친구의 정리를 대신해 준 적은 엄청나게 많았다. 평소에 일 운동. 집. 일. 운동. 집 이외에 다른 생활을 한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해서 말이지. 이번엔 주디가 내 역할을 해주리라 믿고 병원에 가기 위해 길가로 나왔다.

 

 

사실 미국 생활하면서 차가 없으면 정말 불편하지만 나는 지금 차가 없었다. 늘 없는 건 아니고, 동생이 여행 간다고 몰래 빌려간 이후로 나는 차 없이 택시 또는 주디의 차를 타고 다녔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주디가 없으면 난 정말 못 살 것 같아. 20년쯤 후에도 둘 다 결혼 못하면 같이 살자고 해야지

 

그날따라 도로에 차가 없었고, 마치 병원 가기 전에는 딱 낫는다는 듯 환영도 없었던 탓일까? 내 앞에 차량이 한대 섰다. 아무리 봐도 택시로는 안보이길래 나는 혹시 납치 또는 강도인가 싶어 내가 한 손에 끼고 있던 핸드백에 손을 넣어 전기충격기를 찾아 뒤적였다.

 

 

차의 창문이 내려갔다. 그리고 난 전기충격기를 손에 들고 있다. 언제든지 잽싸게 꺼낼 준비가 되어있다. 작동방법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창문을 주시했다. 그리고 그대로 멈췄다.

 

 내 앞에 차량 운전석에 앉아있던 건....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인 톰 홀랜드였다.

 

- 여기서 뭐해요?

톰 홀랜드가 말을 걸어왔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참 친절하기도 하지. 톰이 오지랖이 넓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는데...

 

-저도 볼일이 있어서요. 스케줄 가시나 봐요?

그는 아하하 웃더니 맞다며 공항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 자세를 지적했다. 아마 몸 쓰는 사람이었던 적 있어서 그런 걸까? 나의 부자연스러운 자세에 대해 물었다.

- 아까까지 봤었을 땐 그다지 몸이 불편해 보이진 않은 것 같았는데...?

 

나는 핸드백 속에 손에 있던 전기충격기를 꺼내 들어 보였다. 톰의 표정이 매우 이상해졌다.

 

-세상이 하도 흉흉해서요. 강도나 납치 쪽으로 생각했네요.

-제가 납치할 거라고요?

- 아니요 갑자기 차가 눈앞에 다가오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고요. 톰 홀랜드 씨 말고요.

 

 톰은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나는 그게 인사하기 전 모션일 것 같아 잘 가라며 손 흔들기 위해 손바닥을 올리던 찰나 그가 나에게 웃으면서 제안했다.

- 아마 그쪽 지역이면 공항 가는 길일 텐데 탈래요? 태워줄게요. 또 위험한 사람들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재빨리 올린 손의 엄지와 검지를 붙여 OK사인으로 만들고 톰을 따라 미소 짓고는 내 앞에 있는 차문을 열고 시트에 앉았다. 호의는 환영이지. 안 그래도 요즘 택시비 지출이 너무 컸다. 이 동생 놈에게서 빨리 차를 뺏어야 아니 되찾아야 했다.

 

 

 공항과 병원까지는 아직 거리가 한참 남았었고 작게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가 심심해 보이진 않았지만 운전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게 운전자에 대한 예의일까 싶어 말을 걸었다.

 

 

- 스케줄인데 매니저랑 다른 분들은 어디 가셨대요?

톰은 내쪽을 슬쩍 보고 다시 전방을 주시하더니 운전대를 잡지 않은 한 손으로 자신의 셔츠. 목깃 근처에 있는 단추를 하나 풀으며 말했다.

 

- 답답해서 먼저 보냈어요. 드라이브나 할까 하고요. 아시다시피 촬영하면서 16시간씩 슈트 입고 있으려니 답답하더라고요. 그럴 땐 드라이브가 최고죠.

혹시 분노의 질주 아세요?

 

세상에 그렇게 운전하겠다고?

나는 톰 홀랜드의 의외의 모습에 놀랐다. 아니 실제로도 내 표정이 놀래 보였는지 톰은 변명하듯 다급하게 말했다.

 

- 물론 그렇게 운전하겠다는 이야긴 아니고요! 다른 사람들이 그 영화 보면 시원하다고 하는데 그게 드라이브가 주는 시원함을 나타내 보이는 것 같다고 이야기할 참이었어요.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로 모든 걸 순식간에 이야기했다. 말 겁나 빨라...

 

그중에 내가 들은던 영화 시원하다 드라이브 시원하다 정도? 모를 땐 어떻게 한다?

- 네... 하하 그렇죠

 

웃으면서.. 네 그렇죠라고 하면 ok!

 

이번엔 톰이 나에게 질문했다.

 

- 영화 일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 졸업하자마자 바로요.

 

동아리에서 제작했던 영화가 상 받았거든 그게 경력이 돼서 일하게 됐고 지금까지 내가 카드빚을 갚을 원동력이 되었단다.

 

아~라고 수긍하던 톰은 나한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나는 얼마든지 물어보라고 말했다. 차까지 태워주는 친절한 우리들의 배우(이웃을 바꿔보았다)인데 말이지

 

 

- 제가 영화 각본 받으면서 생각한 건데요, 만약 아이언맨 2에서 나왔던 그 장면 있잖아요. 막! 슈트들이 사람들 헤집고 다니는 사이에서 아이언맨 가면 쓰고 로봇 앞에 있던 애

 

난 깜짝 놀랐다.  바로 이전 환상이 바로 그 장면이었기 때문이었으니까... 뭐지? 우연이겠지?

 

톰은 침을 꿀꺽 삼키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 만약 그 애가 커서 스파이더맨이 됐다면 어떨까요? 아이언맨에 대한 존경심도 가지고 과학애 관심 있어서 과거 부모님이랑 방문했다는 설정으로요.

 

 

이전 환상 때문에 뜨끔하긴 했지만 나쁜 상상은 아니었다. 감독은 이런 유의 시퀀스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이걸 이야기해준다면 100% 좋아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 그렇죠? 이걸 해리슨한테 말했더니 괜한 설정 소리하지 말라고 해서.. 저한테 동의해주시는 분 있으실 줄 알았어요!

 

자신의 말에 동의해주는 사람을 만나 신이 난 모양인지 고개를 까딱이며 더욱 흥겹게 운전을 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 미소 지었다...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엄마미소?

 

 

우리는 그 이후로도 영화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스파이더맨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영화를 어떻게 시작했는지까지. 자신의 집이 있는 마블코믹스를 이번에 영국 일정에 잠깐 집에 들러 가져와서. 연기에 참고할 거라고 하는 것까지 말이다.  나도 연출부에서 일할 마음 가지기 전 중학 교전까지는 마블코믹스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던 것이 있어 잠시 펜을 잡았었다고 말했다.

 

-그럼 그림 잘 그려요?

-어느 정도는 그리는데... 아 얼굴 그려달라고 부탁하지 마세요 그림 그린 다고 하면 늘 사람들이 이 말 꼭 하더라고요

 

내가 못 그리는 건 아니었지만 톰 홀랜드 앞에서는 왠지 실력을 보여주긴 부끄러웠다. 그리고 펜 놓은 지 거의 10년이나 되기도 해서 손이 굳어있어서 지금 그린다면 엄청난 망작이 나올지도.

 

-부탁하려고 했는데 두리 씨가 선수 쳤네요

아쉽다는 듯 말하는 톰 홀랜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지. 부탁하지 말라고 미리 말한 거야. 나중에 손 풀고 혼자 그려서 간직할게. 넌 이미 그려줄 팬들이 많으니까. 그 작품을 간직하렴

 

 

 

그 이후 시시콜콜하게 촬영장 이야기를 하다 병원 근처의 풍경이 보였다. 나 때문에 지체하면 미안해서 한 두어 블록 떨어진 곳인 이쪽에서 내려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저 정류장에 세워주세요

- 아 도착했나 보군요.

 

톰은 백미러를 힐끗 보더니 핸들을 우로 틀어 도로가에 차를 정차시켰다. 그리고 내쪽을 보며 말했다.

 

 

-볼일 잘 보세요. 덕분에 운전 지루하지 않았네요

-제가 방해된 게 아니라면 다행이네요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촬영장에서 봬요

 

인사하고 차문을 닫은 후 톰 홀랜드를 태운 차가 도로 쪽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두 블록이면 걸을 만하겠지 싶어 나는 진료예약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병원으로 걸음을 옮겼다